An Educatio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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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철저한 무능력 덕분인지, 나는 '책에 관한 책', '영화에 관한 책' 등 일종의 '감상문'을 좋아한다. 내가 직접 보지 않아도 직접 본 것 마냥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좋고 내 생각과 비교해가면서 왜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을 했을까,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를 찾는 것이 나름의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팟캐스트를 통해 성시경의 'FM 음악도시'를 듣는데, 푸른밤 시절 애지중지하던 '금동진'을 유희열에게 뺏기고 새로이 찾은 게스트, '금혜리'기자의 '영화, 사람을 만나다'라는 코너를 참 좋아한다. 김혜리 기자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인터뷰 기사들을 평소 좋아했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는데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영화 이야기들은 성시경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을 때도 있다.
영화 포스팅을 하면서 왜 이렇게 주절주절 말이 많으냐 하면, 이 영화 역시 그녀가 소개해 준 영화이기 때문에. 사실 이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미안하게도. 나도 느끼는 것이지만 대학원에 온 이후 영화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 이제는 예전만큼 잦은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런 게으름도 있고, 실제로 이 영화가 많이 소개되고 흥행된 작품은 아니다.
이 영화는 1961년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파리를 동경하는 우등생 소녀. 부모의 속물근성을 경멸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것을 동경하는 한 소녀 제니의 이야기이다. 김혜리 기자가 나보다 훨씬 나은, 훨씬 정리된 말들로 이 영화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으니 다시 듣기를 이용해서 들으면 훨씬 좋은 해설을 들을 수 있을 것. 그것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어질까봐 영화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많이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그 나이 또래의 많은 여학생이 가지고 있을 그 판타지를 적절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영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린 바버가 '그란타'라는 잡지에 실은 회고 에세이를 읽고 감동한 닉 혼비가 곧바로 영화 프로듀서인 아내 아만다 포시에게 이 글을 보여주었고, 포시는 공동 프로듀서인 피오나 드와이어와 함께 곧바로 판권 구입에 돌입한다. 두 프로듀서가 작가를 찾을 때 직접 자기가 하겠다고 나선 것도 닉 혼비 자신이었다. 결국 닉 혼비는 이 영화의 제작 총지휘(executive producer)로도 참여하게 된다.
- 출처 : 알라딘(www.aladdin.co.kr)
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역시. 남자라면 쓸 수 없는 세밀한 감정선들을 제대로 그려냈다 싶었더니 역시나 그렇다.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소녀들은 동화같은, 영화같은 삶과 사랑을 꿈꾼다. 대부분 이런 판타지는 책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소녀들은 그것을 바이블 삼아 '날 진정 사랑하는 남자라면 이렇게 행동할거야'라는 각본을 충실하게 숙지하고 있다(영화 속 제니의 '첫경험'에 관한 씬을 보라). 그리고 그 각본들이 하나 둘 현실이 되어야 행복하다고 느끼고, 그렇지 않은 경우 상대방의 사랑을 의심하며 자신은 불행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밍숭맹숭한 연애를 끝없이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며 인생의 hot & spicy를 찾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비단 연애와 관련한 상황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말 그런가? 행복이 뭘까? 가끔 뜨악스러운 말을 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행복은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매우 공감한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가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는 이러한 글귀가 나온다.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생각에 그건 굳이 따지자면 의미 없는 설문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입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에 관해 글을 쓰라고 하면, 시험삼아 굴튀김에 관해 써보십시오. 물론 굴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민스 커틀릿이든 새우 크로켓이든 상관없습니다. 도요타 코롤라든 아오야마 거리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든 뭐든 좋습니다. 내가 굴튀김을 좋아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2-23.
사회적인 지위나 관계 속에서 나를 규정하는 것은 매우 손쉬운 방법이지만 그만큼 무너지기도 쉽다. 내가 언제까지 누군가의 딸일 수 없고, 내가 언제까지 누군가의 여자친구, 아내, 엄마일 수도 없으며 내가 언제까지 어떤 회사의 직급일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나를 규정하는 가장 확실한 것은 명사보다는 동사나 형용사에 가깝다.
끊임없이 사건들이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드라마가 드라마로서 존재 가치를 갖는 것은 그것이 '드라마'이기 때문 아닐까. 일상에 묻혀 조용히 빛나는 삶의 진리들은 상황을 극적으로 몰아갔을 때 비로소 눈 앞에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표면으로 드러난 행복은 그만큼 깨지기 쉽다.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에서 Susan은 이런 얘기를 듣는다.
You don't want to be happy.
You're a drama junkie.
When there is no drama, you create it.
You sleep with your ex-husband, you cheat on a coma victim, and now you're hiking up a mountain after a guy who has no idea you're coming!
Who knows? Maybe this guy will take you back.
But once the dust settles, you'll kick up some more, because you don't know how to just BE HAPPY.
왜 우리는 행복한 채로 '있는(be)'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지금 현재의 행복을 찾기보단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할 것을 강요당하는가.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 현재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는 걸 왜 말해주지 않는가.
내가 이렇게 자기계발서스러운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큰 탈 없이 지내온 나의 학창시절과 지금도 큰 탈 없이 지나고 있는 나의 현재들에 특별히 감사한다. 긴 방황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고작 학생들의 에세이나 채점하고 가짜 그림이나 집에 걸어둔, 선생님의 평범하지만 건강한 삶의 진가를 알아보는 데 제니는 너무 큰 비용을 치렀다.
아, 물론, 나 역시 엄친아 엄친딸들과 비교하며 열폭한 나의 정신적 비용들을 치르긴 했다. 앞으로도 일정 부분 치를 예정이기도 하다. 그치만 드라마와 소설, 영화를 통해 얻는 '대리만족' 정도면 나같은 보통의 존재에겐 충분할 것 같다.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